나는 요가를 하며 육식을 한다

16년째 요가를 하고 있다. 말이 좋아 ‘요가 선생님’이지, 실상은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수련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매 순간 배우고 깨달으며 점점 요가적 삶에 가까워지는, 나 역시 현재진행형 ‘요가 수련자’니까. 그저 남들보다 요가에 대해 조금 더 먼저 배웠고, 조금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이었다. 6개월 정도 채식을 한 적이 있다. 기존의 식습관에서 고기를 완전히 끊고 오로지 채식으로만 식단을 구성했다. 명색이 요가강사인데, 채식을 하지 않는다는 게 어딘가 부끄럽게 느껴졌달까.

극단적 채식주의자로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삶은 오히려 피폐해졌다. 머리는 어지럽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우울해졌다.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로 꾸준히 채식을 하고 있었지만, 내 몸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했다. ‘나는 육식을 원한다.’

결국 변명의 여지 없이 채식에 실패했다. 그리고는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이렇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요가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채식을 해야 하는걸까’ 하고 생각했다. 다이어트에 실패한 이들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다”라고 부르짖듯,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한 나 역시 어쭙잖은 자기합리화를 한 셈이다.

하지만 채식을 ‘시도’했던 경험은, 결과적으로 나의 식습관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줬다. ‘의식하며 먹기’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음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삶과 죽음을 거친, 과거형으로서의 ‘생명체’다. 소와 돼지, 닭 등 모두 마찬가지다. 식탁 위에 올라오기까지, 고기이기 전에 동물로서 태어나고 키워진 뒤 ‘도살’당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굳이 떠올리지 않는, 당연한 사실이다. ‘바라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내 앞에 놓인 고기 요리에 어떤 세계가 담겨 있는지 들여다보는.

채식을 하는 것과 요가를 하는 것 사이에 등식 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요가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채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건, 내 앞의 음식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다. 음식을 바라보며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윤리를 생각해볼 수도 있고, 생태계와 환경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 ‘요가적 식단’이란 게 있다면, 출발점은 거기서부터여야 할 것이다.

결국 육식을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는 태도다. 그저 배가 고프니까 뭐든 뱃속에 채워 넣어서는 안된다. 몸이 원하지 않는데도 무의식적으로 먹는 행위는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과식은 음식에나 자기 자신에게나 폭력이다. 배고픔이란 감각을 소중히 바라보고, 나의 한 끼를 정성스레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내게 요가적 삶이란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답을 찾는 삶이다. 먹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게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 내가 원하는 음식과 원하지 않는 음식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구별한다. 어떤 음식을 피하고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딱 하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해’ 먹는다.

*해먹라이프 ‘바람까마귀 쿤달리니 요가’ 클래스 오지후 티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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